ALL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임진강(臨津江) 물길 따라서 특별전
기간/ 2012.04.20(금) ~ 2013.03.24(일)
장소/ 임진각 경기평화센타 1층 전시실
임진강물길따라서 포스터

경기도박물관(관장 조유전)과 경기관광공사(사장 황준기)는 임진강 유역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임진강 물길 따라서』특별전을 파주 임진각 경기평화센터 1층 전시실에서 2012년 4월 20일(금)부터 2013년 3월 24일(수)까지 338일간 개최합니다. 이 전시회는 경기도박물관에서 2000년에 실시한 임진강 유역 종합학술조사 성과와 2009년 7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개최한『경기지역문화특별전2-임진강』을 토대로 구성하였다. 전시는 크게 4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1부 ‘굽이쳐 흐르는 강’은 임진강의 자연을 조명하였습니다. 임진강을 무대로 생활해 온 우리 선조들은 임진강의 수려한 경치와 아름다움을 실경산수화와 지도에 잘 표현하였습니다. 옛 지도와 실경산수화 속에 그려진 임진강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를 그리고 즐겼던 선인들의 삶의 여유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명필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임진강에 은거하면서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살아간 흔적입니다.

제2부 ‘오랜 삶의 터전, 군사적 요충지’에서는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자 삼국 간 영토확장과정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던 임진강 유역의 역사와 지리적 환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의 비옥한 저지대와 넓고 평탄한 용암대지 등의 자연환경은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들이 삶을 누리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임진강 유역에는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임진강의 강안 단구 상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임진강이 우리 역사의 무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기는 삼국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세기 중엽 백제는 임진강유역의 마한소국을 흡수한 후 영토를 확장하여 고구려의 평양까지 진출하였고, 고구려 장수왕의 본격적인 남진정책 추진으로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6세기 중엽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에 따라 이후 120여 년 동안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하천이 됨에 따라 임진강의 양안에는 이 시기에 구축된 많은 고구려와 신라의 성곽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7세기 후반 임진강 유역 매초성 전투에서 신라의 승리는 나당전쟁을 종식시켰고, 8세기 중엽 신라는 대동강 유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대 삼국간의 쟁투는 임진강 유역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에도 이곳에서는 봉수, 성지, 도요지, 사지 등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오랜 기간 단절됨이 없이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삶이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3부 ‘고려ㆍ조선시대의 문화와 명인들’에서는 고려․조선시대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과 이곳의 문화를 조명하였습니다. 임진강 지역에서는 “살아서는 장단이요, 죽어서는 파주”라는 말이 있듯이 고려조의 윤관이나 조선조의 황희, 이이와 같은 이들의 산소가 임진강변에 있습니다. 파주는 수도인 한양과 멀지 않기 때문에 능묘가 조영되었습니다. 제8대 예종의 원비(元妃)인 장순왕후(章順王后)를 지금의 파주 조리면 보시동에 조영한 것이 공릉(恭陵)입니다.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 진종(眞宗)과 그 비인 효순왕후(孝純王后)의 능묘인 영릉(永陵)이 같은 면에 소재하고, 인조(仁祖)와 그 비인 인렬왕후(仁烈王后)의 능묘인 장릉(長陵)이 탄현면 갈현리에 있습니다.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강은 명나라 사진이 왕래하는 교통로이자 조선군의 북정 시에는 군사 도로였기 때문에 임진현의 덕진과 장단나루는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임진강변은 수도의 주변지역에 위치하면서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왕족과 사대부들이 거주한 지역이었습니다.

제4부 ‘철조망 아래로 흐르는 강’에서는 분단의 상징이자 통일의 염원을 담고 흐르는 임진강을 해방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1945년 해방 후 위도 38선을 경계로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됨에 따라 임진강 유역의 지리적 중요성은 다시 부각되었습니다. 임진강 유역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칠중성을 중심으로 한 적성 전투였는데, 중공군의 공격을 받은 영국군의 1개 대대가 거의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는 혈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공세를 3일간 지연시켜 반격작전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수도 서울이 재점령당하는 비극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강은 현대 북한과 남한의 경계선 사이로 흐르며 그 역사와 문화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이번 특별전에서는 전시물 외에 임진강유역의 유적여행, 혜음원지, 공동경비구역, 임진강의 민속 문화를 볼 수 있는 영상물과 임진강을 주제로 한 노래 감상코너, 퍼즐 맞추기와 포토 존 등을 체험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전시관람 무료.

주요 출품유물
주요 출품유물입니다.
경강부임진도(京江附臨津圖, 복제품)남쪽으로 한강과 북쪽으로 임진강에 이르는 지역을 볼 수 있다. 임진나루는 임진관(臨津關)이라고 되어 있고, 그 옆에 화석정(花石亭)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한임강명승도(漢臨江名勝圖, 복제품)정수영(鄭遂榮, 1743-1831)이 1796년에 한강과 임진강의 각지를 돌아보며 그린 그림이다. 임진·한탄강의 장면으로는 휴류암(鵂留巖), 백운담(白雲潭), 창옥병(蒼玉屛), 사암서원(思菴書院), 금수정(金水亭), 화적연(禾積淵), 우화정(羽化亭) 등이 있다.
임진서문(臨津西門, 복제품)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肯園 金良驥, 18세기 후반 ∼ 19세기 전반)의 그림으로 조선 후기의 임진나루의 관문과 함께 나룻배에 사람과 말이 탄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황희 초상(黃喜, 복제품)황희(1363.3.8~1452.2.8)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재상(宰相)이다. 황희 초상화는 장수황씨 문중에서 경기도 박물관에 기증하여 보존처리를 거쳐 원형이 복원되었다.
철모와 탄창(鐵帽 彈倉)도라산 유적에서 수습된 철모와 탄창으로 경기도박물관에서 지표조사 당시 발견되었다. 채문토기(彩文土器)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보기 드문 토기로 동체부에 횡으로 5줄의 채색 열이 그어져 있다. 채문토기는 중국 신석기시대 앙소문화기의 채도와 청동기시대 의기로 알려진 홍도와는 다르며 앞으로 규명해야 할 특이한 계통의 토기이다.
댓글 [0]
댓글달기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이 필요합니다.
이전 다음 특별전시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