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관장 이원복)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하며 2014년 3월부터 <이달의 유물>을 소개한다. <이달의 유물>은 경기도박물관 소장 유물 중 일반인들에게 관심 있게 다가갈 만한 유물을 선정하여 집중 조명해보는 코너이다. 2014년 3월 26일 첫 번째로 마련되는 <이달의 유물>의 주인공은 화성 소근산성에서 출토된 돌절구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차는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 때 중국에서 처음 들여왔다고 한다. 그리고 흥덕왕 3년(828)에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대렴(大廉)이 가져온 차 씨를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어 본격적인 재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이미 한성백제(기원전 18년 ~ 기원후 475년) 시기에 왕실과 귀족층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향유되었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자료가 바로 이번에 소개되는 돌절구이다.
당시 백제에서 마시던 차는 떡차(병차餠茶)였다. 떡차는 찻잎을 쌀가루로 쑨 풀과 섞어 덩어리로 만들어 말린 차이다. 마실 때에는 볶은 차를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을 붓고 파, 생강, 귤 등 풍미를 더할 수 있는 것을 함께 넣어 우려냈다. 이때 돌절구로 떡차를 빻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돌절구는 낙랑, 신라 지역에서도 확인되지만, 백제 지역만큼 집중적으로 출토되지는 않는다. 한성백제 시기만 하더라도 왕성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무려 9점이 출토되었고, 근처의 우면동 백제 집터와 소근산성에서도 확인되었다. 차를 마시는데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전자나 잔・완(사발) 등의 중국제 도자기 역시 고구려, 신라에 비해 많은 자료가 백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돌절구에 차를 빻던 소근산성의 지휘관도 여유를 위해 한 잔의 차를 즐겼던 이는 아니었을까. 당시로선 귀한 차 문화를 즐기던 고매한 취향의 사람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