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11월의 유물 : 도운공 시권첩(陶雲公試券帖)
기간/ 2015.10.28(수) ~ 2015.11.24(화)
장소/ 경기도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역사실 앞)

수능이 있는 한국의 11월은 긴장되고 분주하다. 어린 시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는 미래로 날아가서 문제지와 답안지를 미리 보고 오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달콤한 상상은 끝없이 이어져 시험공부를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과 에너지를 쉽게 써버리곤 했다. 여기 그 상상을 떠올리게 하는 유물이 있으니 이름하여 시권(試券).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답안지를 뜻한다.

위인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00살에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는 흔한 이력이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과거는 크게 문과·무과·잡과 등으로 구분되었고, 각각 3년에 한번 씩 치루는 정기시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특별히 실시하는 비정기시로 나뉘었다. ‘文문’을 숭상하는 나라답게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던 시험은 단연 문과였다.

대과(大科)라고도 불리는 문과에 응시하려면 원칙적으로는 예비시험인 생원·진사시에 합격해야만 했다. 이는 대과와 대비시켜 소과(小科)라고 일컬었는데, 각각 초시와 복시라는 1·2차 시험이 있었다. 생원·진사시를 통과하면 낮은 직급의 관직에 임하거나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졌다. 성균관에 입학해서는 일정한 출석 일수를 채워야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문과는 보통 초시(初試)·복시(複視)·전시(殿試) 즉, 1·2·3차 시험이 있었다. 그리고 초시와 복시는 다시 초장·중장·중장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복시까지 통과한 최종 인원 33명은 전시를 통해 등급이 나누어졌다. 물론 시험의 종류에 따라 단계와 절차, 횟수 등은 모두 달랐고,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된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과거에 급제를 위해 대략 25년에서 30년 정도를 공부하였다. 합격자들의 평균 나이도 30대 중반 정도였는데, 고종 대에 있었던 86세의 합격자는 과거 급제가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많은 사대부들이 과거에 매달려 시험만 보다가 한평생을 보내기도 하였다.

11월을 맞아 경기도박물관에서 선정한 <이달의 유물>은 도운(陶雲) 이진망(李眞望, 1672~1737)의 시권이다. 도운 이진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도운 또는 퇴운(退雲)이다. 형조판서,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지냈다.

이 유물은 1711년 식년문과(式年文科) 갑과(甲科) 장원으로 뽑힌 시권으로, 원래의 시권을 잘라 첩으로 만든 것이다. 내용은 말과 행실로 군자(君子)는 천지를 움직인다는 공자의 말씀에 대한 논술(論述)이다. 끝부분에는 신묘(辛卯, 1711)년 식년문과(式年文科) 갑과(甲科) 제일(第一) 인망(人望)이라 쓰여 있어 장원으로 급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답안지를 돌려주었는데, 이는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시권첩으로 만들어 보관과 휴대하기에 편하도록 한 것으로 보아 이 시권 역시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였던 것 같다.

2015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많은 수험생들에게 이 시권에 깃들어져 있을 좋은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

<사진>
도운공 시권첩 陶雲公試券帖
Lee Jin-mang’s Answer Sheet of an Civil Service Exam

1711년(조선)
전주이씨 덕천군파 백헌상공 종중 기증

댓글 [0]
댓글달기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 이 필요합니다.
이전 다음 상설전시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