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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옛이야기 특별전] 허난설헌
admin - 2017.07.17
조회 2237
허난설헌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은 오빠, 남동생과 함께 글을 배웠다.

“여인이라 해도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조선 시대에는 사대부 가문이라고 해도 여성이 글공부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가풍 덕분에 허난설헌은 남자 형제들과 똑같이 글을 배우고 시를 지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네가 내 누이동생에게 시를 가르쳐 주게나.”

허난설헌의 오빠인 허봉은 친구 이달에게 허난설헌을 부탁했다. 이달은 서자 출신이라 벼슬길로 나가지 못하였지만, 글 짓는 솜씨가 뛰어나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허난설헌은 동생 허균과 함께 이달의 가르침을 받으며 글솜씨를 더욱 다듬어 나갔다.

허난설헌은 여덟 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었다. 신선 세계에서 광한전 백옥루에 대들보를 올리는 행사를 여는데,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고 상상하며 쓴 글이었다.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새벽에 봉황 타고 요궁에 들어가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도다. 어영차, 남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못 물 마신다. 은평상에서 잠자다가 꽃그늘 짙은 한낮에 일어나, 웃으며 요희를 불러 푸른 적삼 벗기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쓴 이 시를 보고 사람들은 감탄하며 ‘천재 시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열다섯이 되어 허난설헌이 혼인할 나이가 되자, 명문 가문의 아들인 김성립과 혼례를 올렸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불행하기만 했다.

“아, 답답한 이 마음을 둘 곳이 없구나.”

시댁에서는 여성이 글을 짓는 것을 싫어했고, 남편 김성립도 재능이 뛰어난 아내 허난설헌을 어려워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오빠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두 아이도 돌림병으로 잃자 허난설헌은 점점 시름이 깊어졌다.

“연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발 달빛 아래 지는구나. 내가 쓴 시를 모두 태워 다오.”

허난설헌은 허균에게 자신이 쓴 글을 모두 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누이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허균은 방 한 칸을 채울 정도로 많은 글들을 모아 불을 붙였다.

‘차마 이대로 누이의 모든 글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 누이는 하늘 선녀의 재주를 지닌 사람이야.’

허균은 누이가 놓고 간 글들과 자신이 외워 둔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608년 시 210수, 부 1편, 산문 2편이 담긴 《난설헌집》을 펴냈다.

《난설헌집》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책으로 나왔는데 큰 찬사를 받았다.

“이것이 정녕 조선 여인이 쓴 글이란 말인가!”

허난설헌이 여덟 살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은 허균이 당시 명필로 이름난 한석봉에게 부탁해서 한석봉이 쓴 목판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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