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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놀이 100배 즐기기! (2.16 ~ 3.4)
admin - 2007.02.14
조회 6351
전통민속놀이 100배 즐기기! (2.16 ~ 3.4)

경기도박물관은 매년 설날과 추석에 전통민속놀이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2007년 정해년 설날을 맞이하여 투호놀이, 널뛰기, 윷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 다양한 우리 전통민속놀이 도구들을 준비하여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민속놀이는 그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놀이들의 역사적 유래를 알고 체험한다면 보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 투호놀이
투호놀이는 일정한 거리에 놓인 병 속에 청 · 홍 두 편이 화살을 던져 넣어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성행한 것으로, 『북사 北史』의 「백제전」과 『신당서 新唐書』의 「고구려전」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마광의 『투호격범』에 따르면, “투호병은 입지름이 3치(寸)이고, 귀의 입지름은 1치이며 높이는 1자(尺)이다. 병 속은 팥으로 채운다. 병은 던지는 이의 앉을 자리에서 2살(矢)반쯤 되는 거리에 놓고, 살은 1개를 사용하며 그 길이는 2자 4치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병으로부터 화살 길이의 2배 반 정도 되는 거리에서 화살을 병 또는 귀구멍에 화살을 꽂힘으로서 점수를 정하였다. 던지는 이는 양쪽 어깨에 균형을 취해야 하고,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게 주의해야만 살을 정확하게 던질 수 있다. 투호는 궁중에서 성행하여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지 않은 놀이여서 오늘날 놀이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예기』에 「투호편」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례가 엄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투호놀이의 근간을 찾으려는 노력이 일각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 널뛰기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즐겨하는 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는 음력 정초를 비롯하여 단오나 추석 등 큰 명절에 즐겨하던 놀이이다. 긴 널빤지의 한 가운데에 짚단이나 가마니로 밑을 괴고 그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마주 보고 번갈아 뛰면서 즐기기 때문에 여성들의 신체단련에도 도움이 되었다. 널뛰기는 발방아의 원리로 고안된 것으로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성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옛날에 감옥에 갇힌 남편을 보기 위하여 여성들이 담장 밖에서 널뛰기를 하여 감옥 안을 넘겨보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집안에 하루 종일 갇혀 있다시피 한 여성들이 담장 밖의 세상을 보기 위해 널뛰기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속담에 “널뛰기를 하면 그 해에는 발바닥에 가시가 들지 않는다”,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라는 말은 여성들이 널뛰기를 하여 신체를 단련할 것을 권장한 말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널뛰기는 다리의 힘과 폐활량을 키워주어 몸 단련에 좋을 뿐 아니라 전신 운동으로서도 훌륭한 기능을 하였다. 널뛰기는 조선 초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놀이였다. 설비가 간단하고 넓은 장소가 필요치 않으며 그 방법이 간단하여 여성들이 즐겨하는 놀이이며, 오늘날까지 널리 즐겨하는 민속놀이 중의 하나이다.

* 윷놀이
윷놀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그리고 어디서나 간편히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민속놀이로서, 특히 설날에 많이 하는데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의 「윷놀이조」에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으로 본다”라고 하여 윷놀이의 발생시기를 고려시대로 보았다. 그러나 중국 『북사』와 『태평어람』 등의 문헌을 보면 백제에 「저포」(오늘날 윷놀이), 「악삭」 등의 잡희(雜戱)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윷놀이는 네 개의 가락을 던져 엎어지거나 젖혀지는 결과로 말판에 말을 쓰면서 겨루는 놀이이다. 윷가락 호칭은 일반적으로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도 · 개 · 걸 · 윷 · 모는 본래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도는 돼지(豚), 개는 개(犬), 걸은 양(羊), 윷은 소(牛), 그리고 모는 말(馬)을 가리킨 말이다. 이는 가축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를 윷놀이에 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축은 고대인에게 재산이자 일상생활에서 가장 친숙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윷놀이의 명칭에 결합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최남선의 『조선상식』의 「풍속편」을 보면, “대개 윷은 본대 세초(歲初)에 농인들이 편을 갈라서 일변은 산농(山農), 일변은 수향(水鄕)이 되어서 그 승부로써 당년의 농사가 고지에 길할까, 저지에 길할까를 점단하던 것으로 곧 농가에 행하는 여러 가지 점년법(占年法) 중의 하나이더니 근래에는 고의(古意)를 떠나 심상한 일오락(一娛樂)이 되어 버리고 점복적 의미가 부인의 〈윷괘(卦)〉와 함경도 지방의 〈달윷〉에 남아 있음을 본다.”로 서술된 것으로 보아, 윷놀이는 처음 농사점(占)을 치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원뜻이 없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놀이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윷판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다.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즉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것이다. 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추성이요, 옆에 벌려 있는 것은 28수를 본뜬 것이다. 북신이 그 자리에 있으며 뭇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 해가 가는 것이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중앙을 거쳐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동지의 해가 짧은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들어가 서쪽까지 갔다가 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해가 고른 것이요, 북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지나 남으로 들어갔다가 곧 바로 북으로 나오는 것은 추분의 밤이 고른 것이다. 북에서 시작하여 동을 지나고 남을 지나고 서를 지나 또다시 북으로 나오는 것은 하지의 해가 긴 것이니, 즉 하나의 물건(윷판)이로되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이로다.” 이는 조선 선조 때 문인 김문표의 웇판설에 나오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지극한 이치’와 철학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윷놀이는 지방에 따라 모양과 방식이 다양하였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해 온 놀이이다. 던지는 기교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 가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쓰고 말판을 잘 살펴야 하는 만큼 사고력을 발전시켜 준다.


* 팽이치기
우리나라에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720년에 쓰여진 『일본서기』에 일본의 팽이가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팽이라는 말은 18~19세기에 생긴 말이며 그 이전에는 ‘핑이’라 하였다. 팽이는 박달나무나 대추나무와 같이 무겁고 단단한 나무와 소나무의 관솔 부분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런 나무라야 끝이 쉽게 무뎌지지 않고 오래 간다. 이 밖에 벽돌이나 기왓장을 갈아서 만들기도 하고, 근래에는 베어링과 같은 철제를 팽이 삼아 돌리기도 하였다. 팽이는 보통 몸통을 채로 후려쳐 가면서 돌리는데, 채막대의 길이는 50㎝쯤으로 끝에는 명주실이나 노끈 꼰 것을 매달았다. 그러나 채를 쓰지 않고 돌리는 바가지팽이 · 상수리팽이 · 뺑오리 같은 종류도 있다. 팽이 돌리는 방법은 ‘오래 돌리기’, ‘멀리치기’, ‘빨리 돌아오기’ ‘부딪쳐 돌아오기’, ‘찌게 돌리기’ 등이 있다. 팽이치기는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 놀이이다. 돌리는 과정에서 몸도 단련하고 물체 운동에 대한 지식도 배울 수 있으며 여러 가지 형태의 팽이를 깎고 색칠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의 사고력과 손재주도 키워주는 유익한 놀이이다.

* 제기차기
제기차기는 제기를 차면서 재주를 부리거나 누가 많이 차올렸는가를 겨루는 남자 어린이들의 놀이이다. 이 놀이는 평안도에서는 테기차기, 체기차기, 전라도에서는 재기차기, 제주도에서는 쪽기차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제기를 ‘적이’라고 하였는데 음이 점차 와전되어 ‘더기’, ‘저기’, ‘제기’로 부르게 되었다. 제기는 엽전이나 구멍이 뚫린 주화를 얇고 질긴 한지나 비단에 접어서 싼 다음 양끝을 구멍에 꿰고 그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한 것인데 주로 정초에 즐겨하는 어린이 놀이기구이다. 제기차기는 삼국시대에 출현하여 오랜 세월 전해오는 놀이 중 하나이다. 제기차기와 비슷한 놀이는 축국이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공이나 제기 같은 것을 발로 차며 노는 놀이였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청년들과 소년들이 축국놀이를 한다. 그것은 큰 탄환 같고 위에 꿩의 깃을 꽂았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다리 힘을 겨루며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데 연속 차올리는 사람이 잘 하는 것으로 된다.”라는 서술에서 축국은 오늘날의 제기차기와 이름이 다를 뿐 놀이 방법과 형식이 비슷했던 것 같다. 제기차기 방법에는 한발은 땅에 짚고 다른 발은 땅에 댓다 뗏다 하면서 발목 안쪽 모서리로 연속 차올리기, 한발을 땅에 대지 않고 든 상태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차기, 두발로 번갈아 차기, 한발로는 발목 안쪽 모서리로 차고 다른 발로는 뒤축으로 차기, 한 발로 땅을 딛지 않고 차다가 제기를 머리나 잔등에 올려 얹기, 한발로 올려 차기를 하다가 나중에 발등으로 멀리 차던지기 등이 있었다. 제기차기는 한 발로 오랫동안 온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발로 마치 손과 같이 놀려야 하고 날랜 동작과 명중 능력을 요구하는 체력단련 놀이이다. 그러므로 제기차기는 어린이들의 정신 집중력과 물체의 낙하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키워 주어 몸을 튼튼하게 해 주는 놀이이다.

전통민속놀이 체험은 정월대보름인 3월 4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 참고문헌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민속놀이와 명절』, 대산출판사, 2000 심우성, 『우리나라 민속놀이』, 동문선,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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